<공모전_최우수상> 여의도 한복판서 울려퍼진..._송화
진눈깨비 내리던 밤, 여의도 한복판서 울려퍼진 '님을 위한 행진곡'
송화 2026. 4. 30. 14:08
[백기완 선생 5주기 맞이 '님을 위한 행진곡과 나' 사연 공모_최우수상]
고 백기완 선생 5주기 및 제1회 백기완 문화예술 한바탕(2026년 4월 30일)을 맞아 '백기완노나메기재단'과 <오마이뉴스>가 진행한 '님을 위한 행진곡과 나' 사연 공모에 많은 분들이 응모해주셨습니다. 참가한 분들께 감사드리마, 최우수상 1편과 우수상 3편을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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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계엄군이 점령을 시도한 국회앞에서 시민들이 집결해 계엄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 권우성
"무슨 밥을 그렇게 많이 줘."
고양이 밥그릇에 사료를 넘칠 정도로 수북이 담고 있는 나를 두고 짝꿍이 한마디 한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어떤 일이 우리에게 닥칠지 한 치 앞도 예상되지 않는 순간이었다. 지금 나가서 언제 집에 돌아올 수 있는지, 무사히 들어올 수는 있는 건지. 우리는 잠옷 위에 두툼한 패딩을 껴입고 집을 나섰다. 차에 올라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고 있었는지 신호음이 한참 울린 뒤에나 통화가 연결되었다.
이 야밤에 걸려온 전화에, 엄마는 짐짓 무슨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한 것 같았다. 계엄령이 선포되었다고 말하자 엄마는 황당해 하면서도 못 믿겠다는 눈치는 아니었다.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당부를 거듭했고, 나는 별일이야 있겠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마도 엄마는 통화가 끝난 후 옆 방에서 자던 아빠를 깨웠을 것이 분명하다.
엄마 아빠는 소위 말하는 586 운동권 세대다. 그 시절 뜨겁게 싸우며 어렵게 가꿔낸 민주주의가 다시 무너져 내리는 순간을 맞닥뜨린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허탈함과 분노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일이었을 테다. 시민에게 총부리가 겨눠지는 시대를 다시 목격하게 될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역사의 비극 앞에 잠 못 이루는 사람은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신기할 정도로 사람들이 끝도 없이 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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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계엄군이 점령을 시도한 국회앞에서 시민들이 집결해 계엄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이 국회 담장에 올라가 있다.
ⓒ 권우성
우리는 국회로부터 꽤 떨어진 곳에 차를 세우고 걸어갔다. 걸어가는 내내 진눈깨비가 처연하게 흩날렸고, 고요한 사위에 내 심장 소리가 바깥까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머리 위로 헬기 소리가 '타다다다' 시끄럽게 허공을 울릴 때는 손발이 제멋대로 떨려오기까지 했다.
사람 한 명 다니는 이 없이 적막한 거리를 10분 동안 걸어가며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혹여 이 자리에서 우리가 죽는다면, 그 죽음은 의미 있는 죽음이 될 수 있을까. 만약 우리가 죽는다면 고양이는 엄마 아빠가 맡아서 키워주겠지, 따위의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다행히도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던 순간, 사람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계엄 철폐! 독재 타도!" 국회에 가까워질수록 소리는 더 커지고, 하나된 분명한 목소리로 울려 퍼졌다. 그 틈에 끼어들어 함께 목소리를 드높였다. 국회 정문 앞에서 사람들과 함께 힘차게 팔뚝질했다. 군중 속으로 파고들자 더 이상 무섭거나 두렵지 않았다. 두려움으로 뛰던 심장은 이제 다른 의미로 두근거렸다.
서로가 서로의 체온이 되어 주며 자리를 지켜나갔다. 대중교통도 끊긴 그 새벽에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신기할 정도로 사람들이 끝도 없이 몰려왔다. 술에 취한 아저씨, 백팩을 맨 학생, 마스크를 쓴 젊은 여성들, 카메라를 든 유튜버, 피켓을 든 시민... 각자의 모습은 달랐지만,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을 가지고 이곳에 왔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가결에 터져 나온 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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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2월 3일 저녁 기습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계엄군이 점령을 시도한 국회앞에서 시민들이 집결해 계엄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이 국회 담장에 올라가 있다.
ⓒ 권우성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가결되자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름 모를 누군가 '님을 위한 행진곡'을 선창하자, 모두가 뒤를 이어 따라 불렀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목소리들에 힘이 실려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에 울먹임도 섞여 들어갔다. 죽어간 이들이 남긴 흔적이 그 울림 속에 살아 있었다.
목숨 걸기 쉽지 않은 세상, 목숨을 거는 사람이 바보가 되는 세상, 소리 없이 죽어간 이들의 이름조차 기억되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며 집으로 돌아간다. 우리도 집으로 돌아왔다. 고양이 밥을 그렇게 많이 줄 필요도 없었다며 서로를 보며 웃으면서도 무사히 돌아온 것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진눈깨비 내리는 밤, 민중들의 외침이 굽이굽이 강물에 녹아들었다. 강물은 시대의 기억을 품은 물줄기다. 민주주의를 향한 외침, 억압에 맞선 몸짓, 흔들리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이 모두 강물 속에 스며들고, 이는 흘러 흘러 바다로 간다. 그리고 우리는 또 새날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