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보도

<오마이뉴스> 5주기_ 살아서 돌아오라!, 누군가 적은 글 의미를 깨닫다(정택용)

"살아서 돌아오라!" 백기완 선생 관에 누군가 적은 글, 의미를 깨닫다

정택용2026. 2. 6. 14:42

[백기완 선생 5주기, 추모 편지⑦] 정택용(사진가)

오는 2월 7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백기완 선생님 5주기(2월 15일) 추도식이 열립니다. 추도식을 앞두고 생전 백기완 선생님과 함께했던 이들이 추모글을 보내와 여덟 차례에 걸쳐 싣습니다. <편집자말>

[정택용 기자]

▲  2015년 <백기완의 민중사상특강> 꼴굿떼이야기, 학전 ⓒ 정택용

한동안 선생님을 잊고 있었다. 집 출입문 옆에 걸려 있는 "아혜(아해)야 달은 지는데 남은 술은 더 없다더냐"라고 쓴 선생님의 손글씨가 담긴 액자를 하루에도 여러 번 보면서도 술 생각을 했지, 선생님을 잊고 있었다. 그렇게 멍한 채로 다섯 해가 지나가 버렸다.

현대사 속 인물. 당신 바로 앞을 가로막고 사진을 찍고 있으면 호통을 쳐서 쫓는 사회 원로. 찾아뵈러 가면 반드시 큰절을 드려야 한다는 까다롭고 별난 할아버지. 도무지 친해지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던 분이 어느 순간 노동자들 틈에서 옆에 다가와 계셨다. 기륭전자, 쌍용차, 유성기업, 콜트콜텍, 현대차, 파인텍, 한진중공업,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등 우리가 연대하고 사진을 찍으러 가는 현장들에서 늘 뵐 수 있었다.

기륭전자 경비실 옥상에서 67일간 단식을 하다가 병원으로 실려가는 김소연, 유흥희의 손을 잡아주고 이마를 쓸어주며 눈물 짓던 선생님, 새벽 두 시 한진중공업 앞 도로에서 희망버스 승객들 사이에 한 손으로 머리를 괴고 앉아 지쳐 힘들어 하시던 선생님의 모습에서 인간 백기완을 봤다.

길이 없으면 길을 낸다... 잊고 있었던 선생님의 말씀

▲  2015년 <백기완의 민중사상 특강> 청중등과 함께, 학전 ⓒ 정택용

2013년 <백기완의 비나리>를 준비하는 모임에 어쩌다가 끼어서 통일문제연구소를 자주 들를 때마다 뵙게 된 선생님은 더 이상 까다로운 할아버지가 아니었다. 큰절로 인사드리는 일도 거북하지 않게 됐고 회의 뒤 저녁 먹는 자리에서 술을 따라 주시며 한두 잔 함께하시는 모습은 푸근했다. 무엇보다 농담을 잘 하시고 잘 받아주셨다. 누군가 그런 자리에서 생각 없이 우리말이 아닌 외국말을 쓰면 조마조마하면서도 선생님께 혼쭐이 나기를 은근히 기대했던 기억이 그립다.

선생님은 박근혜를 쫓아내는 길에 함께하셨고 거리에 마지막으로 나오셨던 2019년에는 수많은 현장과 더불어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청년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에 맞선 투쟁과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지켜내기 위한 세종호텔 노조의 농성 투쟁을 지지하셨다. 다섯 번째 기일을 맞는 지금 달라진 게 없다.

윤석열이 쫓겨났다. 김용균의 현장에선 또 죽음이 이어졌고 여전히 '위험의 외주화를 멈추고 직접 고용하라'는 요구를 들고 싸우고 있다. 코로나 시기 경영악화를 이유로 해고된 세종호텔 노동자들은 1천5백일 넘게 거리에서 싸우며 3백일 넘는 기간 고공농성까지 진행했지만 아직도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선생님의 부재가 너무나도 아쉬운 때다. 사람들 마음 속엔 '선생님이 계셨다면 여기도 오셔서 우리와 함께 싸우셨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사라지질 않는다.

술잔을 마주칠 때면 '아리아리' 외치고 '떵'이라고 화답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진보를 우리말로 하면 '아리아리'라고 해. 아리아리란 말은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으면 길을 낸다, 만든다는 말이야. 이게 진보야. 이걸 반대할 놈 없잖아. 그걸 분명히 알면 갈등이 내재적으로 극복돼. 자본주의는 사람을 끊임없이 파편으로 만들어서 노예로 만드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알통으로 먹고 사는 창조적인 노동자들이 퍼뜩 깨우치면 돼. 노동자들의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에서 나오는 신바람만 있으면 된다니까."

길이 없으면 길을 낸다! 잊고 있었던 말이다. 선생님은 옆에 없지만 옆에 계시는구나. 옆에 계시지만 멍하고 흐릿한 우리에게 큰소리로 "아리아리" 외쳐주실 수 없음이 아쉽구나. 그러나 잊고 살다가도 다시금 흐트러짐을 부끄럽게 만드시니 이렇게 어수선한 글로나마 선생님을 그리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다섯 해가 지나고 나서야 되돌아보니

▲  2016년 백범김구 선생의 흔적을 찾아, 마곡사 ⓒ 정택용

선생님을 관으로 모실 때 사진을 찍었다. 돌아가신 누군가의 몸을 찍는 건 두 번째였다. 첫 번째는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돌아가신, 검찰의 부검을 앞둔 포항건설노조 하중근 열사의 멍들고 찢긴 몸이었다. 그 기억이 힘들어 망설였지만 살아계실 때 우리를 아껴주시던 선생님의 마지막 모습을 담는 것도 고마움에 답하는 일이라 여겨 침착하려고 애쓰며 나름 정성을 담아 찍었다.

'버선발'은 아니셨다. 하얀 버선을 신고 꽃으로 둘러싸인 마지막 모습이 편안하고 고요했다. 덮개를 덮고 흐느끼며 한 사람씩 하고 싶은 말을 관에 썼다.

"노나메기 벗나래", "삼촌 장산곶매로 날아오르세요!!", "시대의 스승님! 고마웠습니다. 잘잘", "늘 투쟁하는 마음으로. 가자! 백기완과 함께 민중의 시대로."

그리움의 말들 속에 보통 사람의 관에 쓰일 법하지 않은 말들이 이어졌다.

가장 인상이 강하게 남은 말은 "백기완 힘내라! 살아서 돌아오라!"는 말이었다. 방금 관에 모신 분께 살아서 돌아오라니... 다섯 해가 지나고 나서야 되돌아보니 선생님 말씀처럼 '죽음이라는 그 마지막이 바로 새로운 삶을 열어가는 첫발'이었다. 이 변한 것 없는 세상에서 선생님의 한살매는 '죽어서도 다시 사는 삶'이었고, '참짜 사람답게 사신 한살매'였음을 깨닫는다. 선생님, 부디 잘잘…

▲  2017년 9월, 사진가 정택용은 무거운 장비를 손수 들고 와서 선생이 좋아하던 빛깔인 쪽빛 조끼를 입은 장면을 사진에 담아주었다. 통일문제연구소 ⓒ 정택용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