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소식

<입장문> 살려야 합니다, 나중이 아니라, 지금 당장!

<세종호텔, 한국옵티칼 고공농성 해결을 촉구하는 각계 원로 긴급 기자회견>

살려야 합니다, 나중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나이 든 우리가 간절히 호소합니다.

여러분!

늙어보는 상상을 해 본 적이 있습니까. 있을 겁니다. 사람은, 오지 않은 미래조차 상상할 수 있는 존재니까요. 여러분이 상상하는 늙음은 어쩌면 멋질 것이오, 어쩌면 슬플 것입니다. 다행히도 불행히도 상상과 현실은 어긋날 때가 많습니다. 드물게 좋을 때가 있더군요. 힘겨울 때가 많습니다. 늙음은 무엇보다 조바심이 곁에 머무는 현상입니다.

오늘 우리가 나이 든 몸을 이끌고 폭염을 견디며 이 자리에 선 까닭 또한, 조바심 때문입니다. 저러다 큰일 치르겠다 싶은 조바심,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두려움, 이 비참한 장면들을 뒤에 두고 떠나야 하는가, 죄책감을 떨칠 수 없어 우리는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여러분, 사람부터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살 만큼 살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살아있기에, 죽음을 모릅니다. 삶이 얼마나 귀하고 뜻깊은 은총인지 매일 깨달을 뿐입니다. 살아보니 알겠습니다. 죽음을 무릅쓴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를, 온 힘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몸짓인지를.

 여러분,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매서운 겨울이었습니다. 피땀으로 이룬 민주주의를 얼려 죽일 뻔한 겨울이었습니다. 촛불을 들었던 손으로 응원봉을 바꿔 들며 눈보라와 맞섰던 계엄의 겨울이었습니다. 피비린내 나던 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건 아닐까 몸서리치며 잠을 이룰 수 없던 겨울이었습니다. 민주주의 없는 세상이 얼마나 혹독하고 잔인한지 온몸으로 겪어온 우리가 아닙니까. 독재를 거부하고 민주를 쟁취하는 것이 청춘의 소명임을 믿고 사력을 다해 싸워왔던 우리가 아닙니까.

지난겨울과 싸워 이기지 못했다면, 많은 이들이 이미 죽은 목숨인지도 모릅니다. 칠흑 같은 유신의 어둠과 싸웠던 우리는, 야만적인 신군부의 폭력과 싸웠던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없는 세상에서 사람 목숨은 파리만도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긴 과거를 육신에 새기며 살아온, 나이 든 사람들입니다.

무도한 윤석열이 권좌에서 끌려 내려왔을 때, 그 안도감을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새로운 대통령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기를 누구인들 간절히 기도하지 않았을까요. 그것이 단지 권력의 교체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향한 첫걸음이기를 바라는 심정, 굴뚝 같지 않았을까요.

며칠 전, 이재명 대통령이 세월호, 이태원 참사의 유족을, 오송 지하차도와 무안 여객기 참사의 유족을 만나 고개 숙이고 정부 최고책임자로서 사과했을 때 위로받은 건 단지 유족만은 아니었습니다. 진실규명과 엄중 책임을 약속하고, 재발 방지를 다짐했을 때 뜨거운 박수를 보낸 건 지지자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제발 거기서 멈추지 마십시오.

여기 또 다른 참사가 있습니다. 오래도록 지속되어 온 참사, 한 자리가 아니라 이 땅 온누리에서 자행돼 온 참사, 노동의 참사입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사회적 책임과 의무 없이 저지르고 방치해 온 노동의 참사 말입니다. 오늘도 일터에서 삶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끼이고 꺾이고 눌리고 떨어져 사라진 삶들이 우리 곁을 배회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재난이 아닙니까, 어째서 참사가 아닙니까.

그저 이윤만을 좇아 두부 자르듯 사람을 자르고, 나 몰라라 공장문을 닫고 달아난다면, 그런 짓을 국가가 비호 한다면 범죄자는 누구입니까.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배 바닥에 철판을 용접해 감옥을 만들고 스스로를 가둔 조선소 하청노동자 유최안을 아십니까. 먹튀 자본이 버리고 떠난 불탄 공장 옥상에서 오늘로 562일, 그 참담한 시간을 견디고 있는 해고노동자 박정혜를 아십니까.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노동자의 단결권을 짓뭉개고 거리로 내몬 악질 고용주 세종호텔에서 해고되어 지금 저 위 아슬아슬한 교통시설물 위에서 160일째 무너지고 있는 요리노동자 고진수를 아십니까. 저 허공의 ‘하늘 감옥’에서 두 사람이, 우리 모두의 두 사람이 앞이 보이지 않는 목숨이 매달린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장면들이 우리가 살아왔던 머나먼 과거의 일이 아니라, 이 시간 이 자리의 일이라는 사실이 우리를 못 견디도록 참담하게 합니다.

 여러분들께 당부합니다.

 시민 여러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관계자 여러분,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할 의회의 여러분, 사람부터 살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호소하는 이 조바심이, 우리 모두의 조바심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간이 없습니다. 지금은 ‘나중에’를 말할 수 없는 시점입니다. 시민이 나서주십시오. 대통령이 나서주십시오. 의회가 나서주십시오.

오래 살아온 사람들로서 당부합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몸부림쳤던 늙은 투사들로서 충고합니다.

고통의 외침에 도저히 귀를 닫을 수 없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호소합니다.

이 당부와 충고와 호소가 우리를 ‘사회원로’라고 불러준 고마운 호칭에 대한 책임임을 통감합니다.

박정혜를 살려야 합니다. 고진수를 살려야 합니다.

그리운 일터로, 가족 곁으로, 친구 곁으로 두 사람을 보내야 합니다.

그것이 지연되었던 정의를, 지금 당장의 정의로 바꾸는 길입니다.

 2025년 7월 22일

고공농성 문제해결을 촉구하는 각계 원로 567인